논설위원 최수호= 우리는 일찍 귀가하기, 규칙적인 운동하기, 소식하기 등등 스스로 자기와의 약속들을 자주하곤 한다.
그리고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자신을 상상하면서 흐뭇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와의 약속들이 지켜졌는가를 되새겨보면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고 있지만 이를 실천하지 못한 것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너져버린 다짐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챙겨보면서 자기와의 약속을 어기는 짓이 자신의 삶에 끼친 악영향들 때문에 분명히 성취해야할 것도 망쳐버리고 후회하는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한심스런 자신의 모습에 저절로 한숨짓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경험들을 수시로 체험하면서도 자신과의 기약을 깨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스스럼없이 벌어지고 말까? 첫째는 꾸준한 독서, 규칙적인 운동처럼 자기와의 약조들은 대부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대가성을 깨닫게 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당장 지켜내지 않아도 별로 문제될게 없으므로 약속파기의 결과에 대한 심각성을 지금은 별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가를 과소평가하여 쉽게 자기와의 약속을 어기게 된다. 둘째는 애연가, 애주가도 장수하는 행운을 누리는 것처럼 자기와의 약속들을 지켜내지 못하면 반드시 나쁜 결과만 가져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약속을 깨는데 심각하게 자책하거나 죄책감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자기와의 약속을 파기하고 만다. 셋째는 금연가, 금주가도 병마에 시달리는 것처럼 약속을 반드시 지켜낸다고 해서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보장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런 의구심에 대한 예외성에 위안을 하기 때문에 부담감 없이 약속을 파기하게 된다. 넷째는 애연가, 애주가처럼 언제나 그래왔기에 이미 별일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데 익숙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어제도 오늘이고 오늘도 내일인 생활에 의식을 줄 긴박성을 느끼지 못하므로 고쳐지지 않는 습성을 고려하는 생활에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자기와의 맹세도 쉽게 무너지게 한다. 다섯째는 일요일에 늦잠 자면서 게으름피우는 것처럼 현실이 긴박성을 주지 않는 다는 점이다. 따라서 다음에 잘 하리라는 느긋함이 약속에 무신경해지도록 하여 미루어도 언젠가는 처리하리라는 자기 암시를 하기 때문에 자기와의 기약을 깨도록 한다.
여섯째는 회사회식, 친구와의 만남처럼 약속을 어기는 요인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기계발서나 강연 등을 통해 자기와의 약속에 재도전할 의지를 충동하여 불합리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면 되기 때문에 또 다른 마법에 기대를 걸면서 지금 실행해야할 언약은 깨버리고 만다. 하지만 우리는 해야 할 일을 실행했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결과는 어떠하리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며, 대체로 어떻게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목표는 그 자체로 당연히 좋은 결과를 마법처럼 불러들일 거라고 여겨버리곤 한다.
사람들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를 믿어버리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먹었던 매력적이고 합리적인 실행계획은 언제나 행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의 의도가 자신의 마음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스스로 만들어버리곤 좋은 의도가 있으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거라는 환상에 젖기 쉽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일은 당연히 해낼 거라는 자기 믿음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모두 이루어지는 것처럼 계속 마음만 먹곤 후회하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 행동은 다르게 하고 자책하는 죄책감만 늘려가게 된다.
따라서 마음과 행동은 별개의 개념이라는 사실을 올바로 깨달아야 한다. 좋은 의도일지라도 생각대로 작동하지 않고, 의욕이 넘쳐도 행동하지 않고, 남들도 자신과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위안에 안주해 버리는 연약한 존재가 실망스럽지만 ‘나’인 것이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행동을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어리석은 인간들로 득실거리고 있다. 이런데도 인간은 이성적이고 주체성이 강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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